*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을 배려하지 않고 편하게 적은 글이니 스포일러가 걱정되시면 읽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왕자는 어떻게 살인자면서 사랑받는 군주가 되었는가?

약제사가 어떻게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는가?

투명인간은 어떻게 눈에 보이면서 스스로 고독해졌는가?



- 인간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손 하나 대지 말라고 으름장 놓은 말에 반항하려고 가방을 바닥에 내꽂고, 쿠션을 집어던지고, 쇼파에서 쿵쿵 뛰는 걸로 분을 풀 정도로 어린 소년이 주인공인 영화, 몬스터콜.


주인공인 코너를 바라보면 슬프다. 학교에선 폭력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병을 앓는 엄마와 단 둘. 혼자 옷을 챙겨입고 빨래를 돌리고 대충 토스트를 챙겨먹는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면 행복했는데, 엄마가 앓고 있는 병은 점점 더 악화되어간다.


코너는 두렵고, 믿고 싶지 않지만 주변에선 놔두질 않는다.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고, 이미 새 가정을 이룬 아빠가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등. 모든 것이 불안함을 가리킨다.


엄마를 잃게 되어버릴 거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코너는 그 사실이 너무도 힘들다. 밤새 딸의 옛 영상을 찾아보는 외할머니의 모습도 코너와 다르지 않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잃더라도 이 힘듦이 그만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렇지만 정말 진심으로는 절대 잃고 싶지 않은 마음.


"인간은 고통스럽고 진중한 사실보다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짓말을 좋아하지.

결국, 코너 네 생각은 아무 의미 없다.

너의 행동이 중요하지."


12시 7분이면 소란스럽게 나타나는, 나무형 몬스터가 코너에게 건넨 말이다.



- 네 가지 이야기


몬스터는 코너에게 말한다.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대신 네 번째 이야기는 네가 해야 한다고.


몬스터는 복잡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는 마녀 왕비와 살인자 왕자의 이야기

믿음의 대상은 신중하게 골라야한다는 목사와 약제사의 이야기

투명인간이 아님에도 투명인간이 아님을 인정받고자 한 코너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찾아온 코너에게 몬스터는 네 번째 이야기를 할 것을 요구한다.


코너는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죽을 거라며 거부하지만,


몬스터는 도리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코너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계속되는 협박과 함께 주변 땅이 모조리 갈라지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엄마가 나타난다.


갈라지는 땅을 밟고 달려가 떨어지기 직전의 엄마 손을 붙잡은 코너는 절대 이 손을 놓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린 소년의 힘은 나약했다. 점점 황폐화되어가는 주변 때문에도, 스스로 힘이 부쳐서이기도.


결국 그는 엄마의 손을 놓치고 만다.


꿈에서 깨게 해달라고 빌지만 몬스터는 코너에게 계속해서 진실을 말할 것을 요구한다.



"엄마가 떠날 거란 걸 알기 싫어.

다 끝났으면 좋겠어.

내가 떠나 보냈어.

내가 죽게 둔 거야."


네 번째 이야기를 남기고 지친 코너는 낭떠러지로 힘없이 떨어져 내려간다.




- 유일하게 소란스러운 12시 7분


12시 7분이 아니지만 소란스레 비가 쏟아지고, 코너를 찾아 태운 외할머니의 차는 빗속을 뚫는다.


기차 시간 때문에 앞이 가로막히고 닫힌 창문으로 흐리게 부닥치는 빗속에서 코너와 외할머니는 처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마찰이 심하긴 했지.

하지만 우리도 공통점이 있어.

엄마는 우리가 나눈 공통점이야."



매서운 비를 맞으며 달리는 그들을 막아선 차단기 앞에 서서 가까운 공간에서 온기를 나누며, 코너와 외할머니의 갈등이 엄마를 통해 조금은 해소되는 부분이다.


어쩌면 엄마에게 진심을 전하러 가기 전에 앞서서 네 번째 이야기에서 해결해야할 과제 중 하나였던 게 아닐까.





병원에 도착한 코너는 꿈과 다르게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은 채로 진심을 전한다.


"가지마요,

가지마.."



아무리 인간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짓말을 좋아한다지만,


아무리 힘들고 또 괴로운 심정으로 혼자 견디고 버티면서, 하루 중 유일한 시간만 감정을 내보이며 지내야만 했던 나날들이었지만,


그래도 코너는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했다.


 

소년은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는 떠나 보낼 수 있었다.


이것이 네 번째 이야기의 끝이다.


그리고 시간은, 12시 7분.




- 몬스터콜


코너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7시다. 시침이 7, 분침이 12를 향해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소란스럽던 12시 7분과는 정반대되는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코너는 열쇠구멍 사이로 바라보기만 하던 방을 제 방으로 배정받고, 외할머니에게 열쇠를 받아 열고 들어간다.


제 물건들이 이미 정돈된 방에서 엄마의 그림을 보게 되는데


이제껏 몬스터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그려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빠에게 몬스터 이야기를 했을땐 이상한 취급을 받아서 힘든 현실에 도피하기 위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인 줄 알았지만


사실 몬스터는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였고, 엄마에게 더 다가가는 길이었으며, 엄마 역시 어릴 적 몬스터의 존재로 힘든 일을 견뎌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영화 장면 중 사진 속 할아버지로 등장하는 배우가 몬스터의 성우인 '리암 니슨'이다. 계속해서 이어져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 누구에게나 몬스터는 있을 수 있다. (여담)


1. 어리다고 말하자면 너무나도 어린 12살 소년, 그가 혼자 감당하던 고독함과 힘겨움이 표출되어 유일하게 소란스러울 수 있었던 시간, 12시 7분.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때로 시간과 함께 마음을 끄집어내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도 있을테고.


2. 코너와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설정 때문인지,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멋진 그림 영상으로 구현되어 이야기때마다 눈이 즐거웠다.

(몬스터가 나오는 장면도 화려하지만 나는 그림쪽이 더 좋다.)


2-1. 아마도 몬스터가 이야기할때 펼쳐지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이 영화의 가치를 높이는데 한 몫 했을 거 같다.


3. 연필로 직선을 긋는 영상이 나왔을때 후에 이변이 없는 한 이 장면이 가장 좋을 거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다 보고난 뒤에도 왜인지 유효하다.


4. 사실 난 2번째 이야기는 이해가 잘 안 된다. 목사와 약제사 이야기. 코너도 엄마의 병이 낫지 못할 거라고 어렴풋 생각하게 되어, 그 믿음의 모자람을 탓하는 걸까? 누군가의 해석을 더 보고 싶다.


5. 찾아보다 알게 된 건데 코너의 역할을 맡은 루이스 맥더겔은 실제로 촬영 전 엄마를 떠나보냈다고 한다.

이런 건 알지 못했어도 좋았을텐데.





+ 최근 글